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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역사를 바라보는 미제스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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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3-12-26 07:59 조회27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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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역사를 바라보는 미제스의 입장

Jonathan Newman, 2023. 10. 27. (이종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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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경제는 평화적 협력을 수반한다. 시민들이 전사가 되어 상품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대신 서로 싸우게 되면 시장 경제는 붕괴한다.”


이렇게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자신의 저서 <인간 행동>에서 ‘전쟁의 경제학’이라 불리는 짧은 장을 시작한다. 


11쪽(학술판의 817~828쪽)은 짧지만, 전쟁의 역사, 전쟁의 원인, 전쟁을 이기는 방법, 전쟁의 비용, 그리고 전쟁과 평화를 위한 이념적 조건에 대한 견해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작업 방식이 그렇듯이, 미제스는 종종 전쟁을 국제분업의 평화적 협력과 대조한다. 



전쟁의 역사


전쟁에 관한 그의 짧은 역사에서, 미제스는 원시시대의 전쟁들을 양측이 상대방을 완전히 전멸시키려고 했던 총력전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정복 정신”은 고대제국들과 그 지도자들에게 적용되었는데, 그들은 정복되지 않은 영토를 잠재적인 무역 상대국이 아니라 “나중에 맹공격할 대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 군주들은 가신의 제한된 의무에 의해 제약을 받았다. 왕의 부하들은 자신의 땅, 재산 및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고 영원히 싸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을 끝없이 벌일 수 없었다. 이것이 “여러 군주국들의 평화로운 공존”이 시작된 경위이다. 


근대 초기에 군주들은 군대를 국유화하려고 애썼지만, “그러한 군대의 조직, 장비 및 지원은 군주의 수익에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 그리고 “시민들은 자신들에게 재앙을 가져다 주고 세금 부담을 늘리는 전쟁을 싫어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제약으로 인해 군주들은 소수의 도시만을 정복하려고 하는 제한적인 전쟁을 치렀다.


이 군주제 시대와 그 이후의 철학자들은 전쟁은 무익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불구가 되고, 부는 파괴되고, 국가들은 왕들과 지배 계급들의 이익을 위해 황폐화된다. 민족들 스스로는 승리로부터 어떠한 이익도 얻지 못한다. 시민 개개인은 그들의 통치자들이 한 지방을 합병하여 왕국의 크기를 늘린다 해서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전쟁은 이익이 되지 않는다.


전쟁을 일으키던 폭군 정부들은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혁명전쟁이 발발했다. 동시에 자유주의 철학이 탄생했는데, 그 철학에서 “국내문제와 국제관계 모두에서 자유무역은 평화유지의 필수 전제조건”이었다. 



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미제스는 현대 역사학자들이 전쟁의 원인을 대하는 방식을 비판한다. 그들은 공격적인 민족주의와 군사기술 및 전략의 발전을 전쟁의 주요 동인으로 보았지만, 미제스는 이것을 “기업과 사회주의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라는 가장 중요한 원인의 단순한 증상으로 보았다. 이러한 경제적 민족주의와 그 외 수반되는 보호주의 정책은 국가 간의 갈등을 야기하고 개별 시민들에게 국가의 전쟁을 지지할 이유를 제공했다. 이러한 전쟁의 인기는 원시 시대와 같은 총력 또는 무제한 전쟁의 재등장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미제스는 “왕족 군대 간의 제한적인 전쟁을 전면전, 민족 간의 충돌로 변형시킨 것은 군사기술의 전문성이 아니라 자유 방임 국가 대신 복지국가로의 대체”라고 결론짓는다.


그러므로 국가주의의 이데올로기는 현대의 총력전을 추동하는 것이다. 미제스가 전쟁을 폐지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조약이나 “국제연맹과 국제연합과 같은 관료적 기구”의 능력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정복의 정신은 문서작업으로 억눌릴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와 경제정책의 근본적인 변화이다.” 



전쟁과 자본주의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현대의 총력전은 교전국들에게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미국은 전쟁 노력에 전 경제를 동원했다. 미제스는 승리를 위해서는 가혹한 가격 통제와 직접적인 배급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정부는 세금, 차입, 인플레이션을 통해 전쟁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노동조합의 압력에 굴복하여 전쟁 전의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을 전쟁 중에 보존하는 불가능한 임무를 떠맡았다. 이는 필연적으로 정부의 생산에 대한 완전한 통제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제스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물질적 이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법령과 정부의 급여 명단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문서작업이 아니라” 민간기업의 생산성이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미제스는 겉보기에 역설적인 것, 즉 전쟁과 자본주의의 양립불가성을 밝혀낸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평화로운 국가를 위한 계획”이지만, 시장 경제의 생산성은 “가장 효율적인 방어수단”을 제공한다. 미제스는 이 역설을 다음과 같이 해결한다.


전쟁과 자본주의의 양립불가성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전쟁과 고도의 문명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효율성이 정부에 의해 파괴수단의 생산으로 향한다면, 민간기업의 독창성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무기로 드러난다. 전쟁과 자본주의가 서로 양립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비할 데 없는 효율성이다.


그러므로 역설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소비자에게는 자본주의가 그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폭력의 사도들”에게는 전쟁광 국가와 그의 공범인 자본주의는 무기공장이다. 폭력의 사도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시장 경제를 장악하는 한, 그들은 주권자인 소비자를 폐위시키고 평화와 번영의 기초 자체를 파괴한다. 


다음으로, 미제스는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발전된” 국제적 분업에 관심을 기울인다. 교전국들은 경제적 자급자족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는 단지 그들이 이전의 무역 상대국들을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봉쇄로 인해 한 국가는 사실상 모든 무역을 차단하여 품질이 낮고 비용이 많이 드는 대체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미제스는 승리를 위해 “오직 중요한 것은 전쟁 준비”라고 결론짓는다. 이윤에 대한 이러한 고려의 포기는, 위의 고려 사항들에 덧붙여서, 전쟁 사회주의, 즉 국가가 전쟁 중에 경제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국가 숭배


미제스는 전쟁의 무익함에 관한 부분으로 이 침울한 장을 끝맺는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인간을 동물적으로 만든다. “인간을 동물과 구별하는 것은 분업하에서 협력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에 대한 통찰이다.” 국제적 분업은 평화를 낳는 동시에 평화의 산물이다. 


분업을 옹호하는 자유주의 철학은 “신성 국가”의 가짜 신학인 “신성 신학”과 양립할 수 없다. 이 거짓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그 신이 저지른 악한 전쟁의 끔찍한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 “현대의 전쟁은 무자비하며 임산부나 유아를 살려두지 않는다. 그것은 무차별적인 살육과 파괴이다. 그것은 중립국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 수백만 명이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가 되거나 조상들이 여러 세기 동안 살았던 곳에서 쫓겨난다.” 



글쓴이) Jonathan Newman

조나단 뉴먼은 미제스 연구소의 펠로우이다. 오번 대학교(Aubur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미제스 연구소에서 연구 펠로우로 활동했다. 그는 2021년 연구와 교수 활동에서 전도유망하고 우수한 젊은 학자를 위한 Gary G. Schlarbaum 상을 받았다. 이전에는 브라이언 대학(Bryan College)의 경제학과 재무학 부교수였다. 그는 <Quarterly Journal of Austrian Economics> 및 매튜 맥카프리(Matthew McCaffrey)와 페르 빌룬드(Per Bylund)가 편집한 책들에 기고한 경력이 있다. 그의 연구는 오스트리아 경제학, 인플레이션과 경기변동, 그리고 경제사상의 역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는 미제스 대학원에서 ‘거시경제학 및 수량경제학: 활용과 한계’에 대한 강의를 했다. 그는 <The Broken Window>와 <Ludwig the Builder> 두 권의 어린이 도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의 논평은 <Mises Wire>와 <Power & Market>에 정기적으로 실리고 있다.


옮긴이) 이종선 (인제대학교 명예교수, 정치학)


출처) https://mises.org/wire/mises-history-warf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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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도헌님의 댓글

김도헌 작성일

전쟁과 평화.
1.전쟁은 파괴와 약탈 그리고 사회적 분업의 해체를 불러온다.
2.평화는 사회적 협력과 노동분업을 통한 부의 생산을 불러온다.
3.그러나 케인스 경제학은 깨어진 창을 예로 들면서 유리업자에게 약간의 부를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4.전쟁은 실업률의 감소와 더 많은 파괴를 통해서 더 많은 건설과 더 많은 새로운 생산설비를 만들어낸다고 극찬하는 것이 케인지언들이다.
5.그러나 케인스경제학이 보지 못한점은 파괴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생산품이 남아 있을것이며 더 많은 자본과 자본재들이 다른 많은 것들을 창조해냈을 것이라는 점이다.
6.실업률은 극도로 낮아지진다는것도 육해공군에 입대하는 사람들이 통계적인 수치를 충족하는 것은 물론이고 실업상태에 있던 여성들이 군수물자들을 생산하기 위해서 가정에서 직장으로 가야함을 뜻한다.
7.바스티아의 깨어진 창과 더불어서 케인스의 깨어진 창은 말은 같지만 의미하는 바는 완전히 다르다.
8.바스티아의 깨어진 창은 유리창이 깨어지지 않았다면 유리창을 갈 돈으로 생겼을 구두와 외투 또는 책을 뜻한다.
9.케인스의 깨어진 창은 유리창이 깨어져서 유리창업자에게 약간의 수익이 돌아감을 뜻한다.
10.한국 전쟁에서 대한민국이 생산설비와 집들이 파괴되지 않았다면 더 쉽게 빨리 전쟁을 극복하고 일어났을 것이다.
11.미제스도 스웨덴이 잘사는 것도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아서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잘사는 것이라고 지적한바 있다.
12.케인스가 맞다면 맨날 파괴하고 부수고 전쟁을 일으키면 다른 국가보다 잘 살게 된다는 뜻이니 이보다 사람들을 오도하는 이론도 없을것이다.
김도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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