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어린이용 명절로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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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4-01-02 02:31 조회946회 댓글1건본문
자본주의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어린이용 명절로 만들었나?
Ryan McMaken, 2023. 12. 23 (김행범 옮김)
물론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한 최초 세대는 아니었다. 진 셰퍼드(Jean Shepherd. 1921~1999)가 1940년을 다룬 영화 '크리스마스 이야기'(A Christmas Story)에서 보여주듯이, 크리스마스는 산타에게서 새 비비산탄총과 같은 꼭 필요한 장난감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지 전략을 세우는 시기였다. 해마다 벌어지는 크리스마스 선물 잔치는 크리스마스가 "어린이들의 한 해 전체를 좌우하는" 날이 되었음을 의미했다.
더욱이, 어린이용 선물이 수없이 많다는 것은 크리스마스가 많은 점에서 바로 어린이에게 초점을 둔 휴일이 되었다는 측면을 보여준다. 산타클로스부터 외관을 화사하게 장식한 집이나 셀 수도 없는 어린이용 크리스마스 영화와 그림책에 이르기까지 크리스마스는 어른들이 부모의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엄청난 시간, 돈, 그리고 힘을 투입하여 아이들을 즐겁게 만드는 때가 되었다.
그러나, 물론 오늘날 많은 의식(ritual) 및 문화적 표현이 그렇듯이, 크리스마스 때 어린이의 즐거움과 선물에 아주 집중한다는 것은 현대 경제가 초래한 부(富)와 가처분소득 때문에 가능해졌으며 아주 최근에야 나타난 현상이다.
어린이가 중심이 된 초기의 크리스마스 의식들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선물하는 건 새로운 일이 아니다. 니콜라스 오르메(Nicholas Orme)가 그의 저서 '중세기의 어린이들(Medieval Children)'에서 언급했듯이, 아기용 딸랑이는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 철학자 자신도 딸랑이를 "아이들이 남에게 해를 주지 않고도 자신의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수단"이라고 칭송했다. 오메의 묘사에 따르면, 중세 시대 아이들은 작은 풍차나 팽이 같은 간단한 장난감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으며, 이 장난감들을 "팔랑개비", "빙글빙글이" 같은 다양한 이름의 속어로 불렀다. 여자아이들은 당시 포펫(poppets)이라 부르는 인형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인형은 상상력이 더 풍부한 형태의 놀이를 필요로 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이런 장난감들을 갖게 해주었으며, 또 이 장난감들을 직접 만들어 내었다. 일부 어른은 시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판매할 장난감을 만들었다. 어떤 장난감은 남녀 장인(匠人)을 고용해 집에서 장난감을 만들어 상인에게 판매하는 대량생산으로 제작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초기 시절의 어른들이 어린이를 즐겁게 만드는 데 얼마나 중점을 두었으며, 또 무슨 목적으로 그리했는지에 관해선 의문점이 남아 있다.
필립 아리에스(Philippe Ariès)는 영향력 있는 그의 책 '어린이의 세기'(Centuries of Childhood, 1960)에서 중세 말과 근대 초기에 어른들이 어린이들의 놀이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아리에스는 16세기 이전 시기에서는 어린이들이 대규모 공동 축제에서 역할을 담당하기는 했으나, 그것이 관심의 초점은 아니었지만 16세기가 되자 그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기술한다. 이 때문에 어린이가 명절 잔치에 관여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아리에스가 제공한 증거에는 1660년대 네덜란드 화가 얀 스틴(Jan Steen)이 그린 '성 니콜라스 축제(The Feast of Saint Nicholas)'라는 그림이 있다. 스틴이 지적한 장면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장난감을 찾는 것을 도와주는 행사를 마련했더. 바로 "산타클로스"의 원형인 성 니콜라스(St. Nicholas)의 축제이다. 스틴은 부모가 집안 곳곳에 아이들을 위해 숨겨둔 장난감을 찾는 걸 도와주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미 장난감을 찾아낸 아이들도 있다. 어떤 여자아이는 인형을 들고 있다. 장난감으로 가득 찬 양동이를 들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신발들도 더러 놓여있다: 혹시 어떤 나라에서는 19세기와 20세기 아이들이 크리스마스이브 난롯불 앞에 놓았던 신발에 장난감을 숨기는 관행이 이미 있었던 것일까? 이것은 더 이상 거창한 집단적 행사가 아니라 조용한 가족 행사이며, 이렇게 가족에게 집중하다보니 어린이 주변에서 계속된다. 가족 축제가 되다 보니 바로 어린이 축제가 된 것이다. [강조 추가]
이 이미지가 네덜란드 화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상인 중심의 부르주아 정치 경제가 그 국민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만든 네덜란드 공화국에서는 이러한 장면이 더 흔했다. 아리에스는 이 그림이 오늘날 어린이 중심의 명절 의식에 반영된 "어린이와 가족에 대한 현대적인 감성"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놀이를 즐거워하는 이러한 초점은 널리 잘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17세기 및 18세기의 많은 도덕주의자들은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는 것(coddling)'하는 것에 대해 반복적으로 경고했다. 한 에티켓 가이드는 "아내, 어린 아이 및 아이의 유모에 관해서만 말하는" 따분한 인간이 되지 말라고 경고했다. 장 밥티스떼 라살(St. Jean-Baptists de La Salle. 1651-1719)은 "아이가 원하는대로 부모가 해 준다"는 태도로 자녀를 "우상 숭배적 방식으로" 다루는 부모들을 비난했다.[역주1]
오르메(Orme)가 보여주듯이, 어느 시대이건 부모는 제 자녀에게 애정을 가졌고 너나없이 자녀의 안전과 행복을 원했다. 그러나 이것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 있다. 어느 시대에는 평범한 부모와 엘리트 모두 아이들의 놀이를 촉진하는 것이아이에게 좋을 뿐만 아니라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에게도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시대 및 장소에서는 그러한 태도는 지나친 것이어서 "아이를 망친다"고 생각하는 여론 주도층이 있기도 했다.
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16세기에 아이를 망친다고 본 '문제'는 별일도 아닌 것에 호들갑을 떤 것으로 보일 것이다. 수 세기에 걸쳐 자본의 완만한 축적, 섬유 무역, 해운업, 그리고 기타 모습의 경제 진보 덕택으로 영국, 프랑스 북부, 그리고 저지대 국가들은 아이들에게 "장난감으로 가득한 양동이"를 줄 수 있을 만큼의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유럽에서 당시 가장 부유한 지역의 생활 수준조차 19세기 및 그 이후의 유럽보다는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남유럽 및 동유럽의 생활 수준은 그보다도 훨씬 더 낮은 경향이 있었다.
이 시기에는 아동 노동도 보편적이었는데 이는 그것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노동만으로 가족이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없는 게 보통이었다. 농업 가정 및 수공업 가정은 아이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나이가 든 아이들은 다른 가정의 종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어린이들은 경제 진보의 과실을 누리고 있었지만, 아이들도 시장에서 어떤 형태로든 소득을 만들어 내야 했기 때문에 아이들의 유년기는 오늘날보다 훨씬 짧았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어린이의 순수성 보존"을 추구하다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추세는 19세기에 더욱 가속화된다. 킴벌리 레이놀즈(Kimberley Reynolds)는 아동 문학에 관한 그녀의 저서에서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어린이를 발명(inventing childhood)"한 역할을 했다는 건 과장이라고 썼다. 그러나, 빅토리아 시대가 "중산층과 상류층이 그 이전의 어느 시기보다 자의식이 강하고 지속적인 유년기라는 신화를 발전시켜 온 것 또한 사실"이라고 말한다.
마이케 라우웨아르트(Maaike Lauweart)는 이렇게 덧붙인다:
19세기에 어린이 및 유년기에 대한 이미지와 생각이 극적으로 변했다. 라파엘 이전파(Pre-Raphaelite).[역주2] 화가인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는 1886년 피어스(Pears) 비누 광고에서 어린이와 어린이 문화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영원한 걸작으로 남겼다. 광고에서 묘사된 아이는 돌보고,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치료해야 할 아름답고도 천진하며 연약한 꿈꾸는 자로 천사의 한 모습이다. <순진무구한 아이(The Innocent Child)>는 어린이다운 순수함을 동경하고 보존하려는 열망으로 목가적 전승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스웨덴의 교육자 엘런 키(Ellen Key)는 19세기를 특별히 '어린이의 시대(Age of the Child)'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그 시기가 아이, 아이의 복리, 교육 및 건강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역주3]
19세기를 '어린이의 시대(Age of Child)'라 부를 수도 있다는 건 놀랄만한 일이 되는데, 왜냐하면 바로 이 시기에 셀 수도 없이 많은 "사탄의 공장(satanic mills)"이라 부르는 곳에서 아이들이 강제로 일해야 했다는 이야기를 우리가 자주 듣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18세기에 시작된 제2차 산업화 물결로 나왔으며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러 훨씬 심해졌다고 한다.
아주 많은 어린이가 공장에서 일하다 죽어가던 것으로 알려진 이 시기를 어떻게 어린이가 새로운 중요 문제로 부각된 시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 답은 아동 노동의 시대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그 스스로 종말을 향해 실제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는 점에 있다. 이 추세는 공장 자체에 의해 초래되었다. 랄프 라이코(Ralph Raico)가 산업혁명에 관한 그의 연구에서 지적하듯이, 산업화로 노동계급이 궁핍해졌다는 마르크스의 미신과는 달리, 19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보통 사람들은 실제로 더 높은 소득을 누리고 재화와 서비스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이는 생계를 위해 아동 노동을 할 필요성이 작아지고 있었음을 의미하며, 가정의 소득이 향상됨에 따라 아동의 노동도 줄어들었으며, 적어도 위험한 일자리들은 줄어들었다. 빅토리아 시대 많은 사람이 이 추세를 환영했다.
이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비 하락으로 많은 제품을 더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시장은 어린이에 대한 빅토리아 시대의 이상에 호응하고 있었으며, 이는 "다른 시장과 더불어 아동용 상품들이 확대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되자 수많은 책과 장난감의 보급으로 어린이에 대한 빅토리아 시대의 관점이 강화되었고,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어린이의 순진무구함‘의 실현 가능성이 점점 커짐에 따라 이러한 생각들은 널리 퍼져나갔다.
따라서, 역사학자 제니퍼 새타우어(Jennifer Sataur)가 지적하듯이 "특히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진 재화들의 대량 생산 붐이 중산층, 산업, 그리고 자본주의의 부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일어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린이가 중심이 된 현대적 크리스마스에 이르다
이러한 새 빅토리아 방식으로 중산층이 어린이에 중점을 두는 것은 인기 있는 명절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의 시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스틴의 "성 니콜라스 축제"에 반영된 애초의 동기는 19세기 경제의 성장으로 결국 더 보편적이고도, 더 많은 사람이 따를 수있고, 더 풍요한 것이 되었다. 미국인에게는 이 모든 것이 1823년 클레멘트 무어(Clement Moore)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Twas the Night Before Christmas)"라고도 알려진 시 "성 니콜라스의 방문(A Visit from St. Nicholas)"이라는 시에서 현대적 형태로 해석되었다.[역주4] 이 시에서 "성 니콜라스"는 아이들의 양말을 채울 "장난감들로 가득 찬 썰매"와 함께 등장한다. 이 시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며, 생활 수준이 빠르게 향상되던 많은 미국인이 '가정적이고도 어린이 중심적인 크리스마스'를 받아들이는 것을 촉진했다.
이 추세는 20세기에도 줄곧 가속화되었고, 오늘날 어린이와 그 부모에게 이처럼 많은 흥분과 즐거움의 원천이 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미지의 크리스마스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크리스마스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어린이가 초점이 된 풍요로움과 여유는 산업화, 자본, 그리고 우리를 앞서간 수많은 세대의 노력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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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1] 장 밥티스떼 라살은 청소년 교육에 헌신한 카톨릭 사제로 후일 성자로 시성되었다.
[역주 2]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의 예술 풍조로서, 이탈리아 라파엘로풍의 미술을 거부하고 예술은 현실 세계를 반영해야 한다는 사조.
[역주 3] 라파엘 이전파에 속한 화가인 존 에버렛 밀레이의 그림 중 한 어린이가 비누 거품을 날리는 작품이 있는데 이를 당시 피어스 비누 회사가 이 작품을 구입해 비누 광고에 사용하면서 어린이가 당시 산업화 시대의 문화의 한 요소로 부각되었다.
[역주 4] 클레멘트 무어가 쓴 이 시 때문에 산타클로스가 성탄 전야에 썰매를 타고 나타나 굴뚝으로 집 안으로 들어와 선물을 양말에 채우고 간다는 미국인의 현대판 생각이 굳어졌다.
글쓴이) Ryan McMaken
라이언 맥메이컨은 콜로라도 대학에서 경제학 학부과정을 거쳐, 석사과정에서 공공정책, 재정, 그리고 국제관계를 공부했다. 현재 미제스 와이어의 편집장으로 자유에 관해 영향력있는 글들을 왕성하게 발표하고 있다.
옮긴이) 김행범 (부산대학교 명예교수)
출처) https://mises.org/wire/how-capitalism-made-christmas-holiday-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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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도헌님의 댓글
김도헌 작성일
불교 집안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
1.우리집은 세세손손 불교집안이었다.
2.할아버지도 외할아버지도 외할머니도 어머니도 나를 부처님께 빌어서 겨우 낳을수 있으셨다고 말씀해주셨다.
3.그러나 나는 부산 감만동으로 초등학교때 이사를 갔고 그곳은 카톨릭 성당과 기독교 교회만이 있었다.
4.그래서 교회도 다니고 성지 중학교라는 기독교 학교에서 성경도 배웠다.
5.어느 추운 겨울날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왔고 크리스마스이브날 어머님은 독실한 불교신자이셨지만 우리 삼형제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머리맡에 놓아두셨다.
6. 크리스마스 선물은 삼형제에게 서로 싸우지 말라고 동일한 색깔과 제품의 연필과 공책 그리고 문구류였다.
7.아버님께서는 기독교에 더 가까우셨지만 어머님께서는 독실한 불자이셨다.
8.이번 크리스마스 때도 우리 둘째 아우님의 조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인 초록색 인형을 선물하신것도 우리 어머님이셨다.
9.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의 아기 예수님을 찬양하는 날이지만 불자인 우리형제와 어머님에게는 가족들의 사랑의 실천을 확인하는 날이다.
10.물론 아이들에게는 공짜 선물이 기다려지는 날이기는 하지만 어른이 되면 자기의 자녀에게 사랑을 베푸는 부모님을 더 생각나게 만드는 아기예수님의 사랑의 실천을 약속하고 실천하는 날임을 불자로서도 느끼게 된다.
11.내년에는 나도 선물을 받고 싶은데 이제는 선물을 줘야 하는 나이인데 너무 공짜만 바라는 내가 싫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늘 어머님과 아버님의 사랑을 느끼는 소중한 날이다.
12.김 행범 교수님께도 늘 예수님의 사랑이 충만하시기를 기도 드린다.그리고 늘 나에게 사랑을 실천하시는 김 행범 교수님께서도 제가 불자지만 그래도 사랑의 실천하신 아기예수님의 탄생 날에 가족처럼 소중한분들에게 행하시는 사랑의 정신을 나는 배운다.
13.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새해에도 모두의 마음속에 예수님의 사랑이 충만하기를 기도해본다.
김도헌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