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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경제학 노벨상에 관한 두 스웨덴 사람의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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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4-01-30 03:18 조회45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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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경제학 노벨상에 관한 두 스웨덴 사람의 견해

Joakim Book / Per Bylund, 2023. 10. 14 (황수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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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9일 월요일, 스웨덴 왕립 학술원은 알프레드 노벨 기념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을 하버드 대학교 클로디아 골딘(Claudia Goldin)에게 수여했다. 두 스웨덴 국외 이주자(페어 바일런드와 조어킴 북)가 그 상과 올해 수상자의 의미를 숙고한다.]



페어 바일런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로서, 경제학상−종종 오해를 일으키도록 경제학 노벨상으로 불린다−의 발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혹은 양쪽 다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문제이다. 경제적 추론의 오래고 건전한 전통에 일치하게 연구하는 경제학자에게 상을 수여하는 대신에, 스웨덴 왕립 학술원은 전형적으로 단지 하찮은 것만을 했거나 귀납적 자료 채집으로부터 발견을 했거나 수리 게임에 공헌을 한 평생 대학교수들에게 상을 수여한다. 혹은 훨씬 더 나쁘고 매우 드물지 않게, 상은 개입주의 정책을 촉진하거나 받쳐주는 것 같은 연구에 수여된다.


말할 것도 없이, 경제학 “노벨상(Nobel)”은 도움이 되기보다는 대체로 해를 더 많이 끼친다.


그러나 올해의 상은 여러 면에서 여느 때와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그것은 (지금 보통 그렇듯이) 공동 수상하기보다는 단 한 사람에게,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그리고 터무니없는 것이 아닌 연구에 수여되었다. 경제학의 시각에서 앞의 두 가지는 다소 흥미가 없지만, 마지막은 설명과 한 마디 논평이 필요하다.


경제학상은 미제스 전통의 오스트리아학파 학자들이 경제학(즉, 연역적 경제 이론화)이라고 여길 연구에 좀체 주어지지 않는다. 경제 현상들의 진실한 인과 관계들을 생각해 내는 이 접근법은 절망적으로 인기가 없고 그 후 현대의 의사(疑似)-포퍼적(pseudo-Popperian) 과학주의 숭배에 길을 양보했는데, 후자에서 과학은 놀라운 유형들을 찾기 위해 자료 집합들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그것들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도록 명백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스트리아학파 학자들을 포함해서 누구도 상이 원래 진정한 경제학이었었던 것에 수여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은 이론이나 이론화만이 아니다. 인간 행동학(praxeology)은 주류 “이론화(theorizing)”보다 더 높은 기준을 정한다: 그것은 정당화할 수 있거나 반증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진실이다−그리고 그러므로 또한 더 제한적이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은 것이 비이론에 맡겨진다: 경제사, 즉 관찰할 수 있는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 그것들에 경제 이론을 적용하는 것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에서는 주류 경제학에서보다 더 넓은 범위를 가지고 있다. 물론, 밥값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사는 무(無)이론적으로 행해질 수 없고 대신 무엇이 실제 일어났는지 밝히도록 이론을 자료에 적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머리 N. 라스바드는 이 영역에서 큰 연구를 하여, 여러 경제 위기의 본질과 원인을 밝혔다.


올해의 상은, 예테보리 대학교(University of Gothenburg) 교수 란디 얄마르손(Randi Hjalmarsson)이 [노벨상] 발표 중에 서술했듯이, 일반 사람이 주류 경제학자들에서 기대할 것보다도 훨씬 더 경제사에 대한 오스트리아학파 접근법에 가깝다. 공식적으로 하버드 대학교의 클로디아 골딘(Claudia Goldin)에게 “여자들의 노동 시장 결과들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증진한 데 대해” 수여되어, 얄마르손 교수는 골딘이 여자들의 노동 시장 참가와 임금에 관한 새로운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자료를 찾기 위해 “기록을 파나가고(digging through the archives)” 그다음 그런 자료를 설명하는 데 경제학 틀이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데 대해 상이 수여된다고 언급했다. 그 후자의 점은 어떤 진지한 경제학자에게든 (그러나 대부분 경제학자는 오늘날 아마 틀림없이 진지한 경제학자가 아닐 것이다) 놀랄 일이 아닐 것이지만, 스웨덴 왕립 학술원이 발표 동안 이것을 언급할 뿐만 아니라 강조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은 조짐이 좋다.


나는 골딘의 연구에 전문가가 거의 아니지만, 올해의 경제학 “노벨상”이 경제학을 하는 어떤 사람에게 실제로 주어졌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비록 그것이 물론 경제(history)였지 경제 이론(theory)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그렇다. 이것은 위안일 뿐만 아니라 상당히 조짐이 좋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은 주류 경제학이 마침내 귀여운 게임들(cute games)을 다 써버렸고 천천히 진정한 경제학을 하는 것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징후일까?


나는 숨죽여가며 기다리진 않고 있다.



조어킴 북


나는 경제 과학상 위원회가 경제학상 수상자를 발표할 때 보통 즐겁지도 안도하지도 않는다; 그것은[수상자는] 너무나 자주, 그 연구가 위원회의 변절자 가치들(turncoat values)과 조화하는, 어떤 속임수의, 쓰레기 경제학자이다.


이번에는, 그들의 깨어있고(woke) 결코 전문적이지 않은(less-than-professional) 상당한 주의(due diligence)가 부족했을지 모르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골딘은 거의 전적으로 경제사가 된 학문 분야를 위한 괜찮은 선택이다.


이 점에서, 바일런드 교수는 전적으로 옳다.


그것의 불결한 기원이 무엇이건 (경제학상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부 재산이 아니라 스웨덴 중앙은행으로부터의 일반 수입, 즉 화폐 주조 이차(seigniorage)로 자금 조달된다), 그 상은 그 학문 분야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는, 그것의 최고의 공식적 명예이다. 그것은 당신의 연구 (주제)가 더 넓은 대중의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승인 도장이자 표시이다.


이것은 오스트리아학파 학자들이 그 단어를 이해하는 대로의 경제학에서의 상이 아니라, 경제에서의 상이다. (그렇다면, 호칭들을 바꾸라, 그러면 우리는 모두 기쁘다. ...?) 경제학과들에서 일어나는 것들로 오스트리아학파 의미에서 경제학인 것들은 거의 없다. 오스트리아학파 학자들은 상이 “실제” 경제학에 주어지지 않는다고 종종 불평한다. ... 일리가 있다. [그런데] 지난 열두 달에 (오스트리아학파) 경제 이론에서−알프레드 노벨의 이름을 그 위에 가지는 상의 가치가 있는−몇몇 순수 개선을 거명해 보라. 그래서 아마도 우리는 한 중앙은행이 대충 인기 경쟁으로서 수여하는 경제학 노벨상을 가져서는 안 될까? 좋다, 당신이 [그런 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스웨덴 사람들에게 가서 청원하시라. 그러나 꽤 많은 법정 불환 지폐 잔돈(약 백만 달러인데, 골딘 양이 그것을 기부하지 않으면 그 대부분이 결국에는 미국 정부에 맡겨질 것이다)을 가진 귀여운 소(小)산업 상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것은 누군가에게 주어져야 한다.


스웨덴 왕립 학술원이 선정하는 끔찍한 후보가 많이 있다는 점을 신만이 아신다. 작년에, 위원회는 상을 단 하나의, 1980년대부터 자주 반박되는, 논문에 주었다. 그것은 예금 보험과 최종 대부자 기능들이 어떻게 예금 인출 쇄도(bank runs)를 이론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지를 보여주려고 하였다. 이 논문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큰 예금 인출 쇄도 몇몇이 2023년 3월에 일어나기 몇 달 전에 상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 은행업 제도의 취약성 배후에 있는 정책들(양적 완화와 차후의 중앙은행 행동주의)−현대 역사에서 최악의 화폐 정책 실수−은 상의 공동 수상자 중 한 사람, 벤 버냉키(Ben Bernanke)에 의해 열다섯 해 전에 제 자리에 놓였다.


이 상의 아주 최근의 지저분한 과거에서 몇몇 다른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미덕 과시 개발 경제학자들과 그들의 한계적인(중요하지 않은 이라고 정정해서 읽는다) 실험들 (2019); 실험실 바깥에서는 지탱되지 않는 어리석은 심리학 실험들 (2017); 그리고 비록 기후 과학자들의 예측들이 부정확성에서 경제학자들의 그것들에 뒤지지 않을지라도, 기후 변화를 “편입하는(incorporate)” 화려한 모형들을 포함하는 장기 거시 분석 (2018)을 포함한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골딘의 연구를 철저하게 조사하면, 그것은 또한 아주 훌륭한 경제사이기도 하다. 나의 제안은 그녀의 2014년 ≪미국 경제학회지(American Economic Review)≫ 논문, “대(大) 성 수렴(A Grand Gender Convergence)”이다(거기서 그녀는 인정하건대 바람 부는 대로 주장하기는 한다: 그녀는 기업들과 사회가 긴 작업 시간과 힘든 일을 소중히 한다고 비탄한다−흑흑). 그러나 당신은 어떤 사람이, 가장 권위 있는 경제학 잡지의 페이지들에서, “해결책이 (반드시) 정부 개입을 수반할 필요가 없다,”라고 그리고 “여자들이 자기들의 생산성 제고 특징들을 증가시켰으므로 그리고 그들이 더 남자처럼 ‘보이(look)’므로, 임금 차이의 인적 자본 부분이 짜내졌다. 남아 있는 것은 대개 다양한 문화 설비에 대한 자기들의 욕망(유연 근로와 휴식으로 정정해서 읽는다)이 서로 다른 개인들에게 기업들이 어떻게 보상하느냐이다,”라고 제안하는 것을 최근에 언제 보았나?


역사상, 양성간 소득 및 직업에서의 차이들은−심한 편견이나 정부 정책들이 아니라−기술과 개인 선택에서 유래했다.


골딘의 연구가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위원회가 얼마나 많은 다른 나쁜 선택을 할 수 있었을지를 고려하면, 그녀의 수상은 승리이다. 이 밖에도, 어떤 사람이 다음 몇 달에 “성별 임금 격차(gender pay gap)”를 당신에게 퍼부을 때는 언제든지, 당신은 그들에게 보여줄 리버테리언 및 보수주의 출구들에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연구 혹은 의견 작품들뿐만 아니라, 당신을 뒷받침할 빌어먹을 노벨상 수상자도 가지고 있다.


나를 따라 하시라: 성차별은 있지 않다; 성별 임금 격차는 합리적이고, 제정신이며, 해롭지 않은 생활 양식 선택들에서 생긴다. 그것은 골딘의 상에서 얻을 훌륭한 테이크어웨이(takeaway; 사서 가지고 가는 음식)이다.



글쓴이)

Joakim Book

조어킴 북은 작가이자 전문 편집자이다. 그는 글래스고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의 경제학 및 금융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고, 2017년에 미제스 하계 연구위원이었다. 그의 주요 연구 관심들은 화폐 경제학과 중앙은행 역사이다.

Per Bylund

페어 바일런드 박사는 미제스 연구소의 선임 연구위원이자 오클라호마 주립 대학교(Oklahoma State University) 스피어스 경영대학(Spears School of Business) 기업가 정신 학부(School of Entrepreneurship)에서 기업가 정신 부교수 및 조니 D. 포프 교수(Johnny D. Pope Chair)이며, 스톡홀름 라티오 연구소(Ratio Institute)의 부연구위원이다. 그는 이전에 베일러 대학교(Baylor University)와 미주리 대학교(University of Missouri)에서 교수직을 가졌다. 바일런드 박사는 기업가 정신과 경영 양쪽 다에서의 최고 저널들에서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계간 학술지(Quarterly Journal of Austrian Economics)≫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논평(Review of Austrian Economics)≫ 양쪽 다에서도 연구를 발표했다. 그는 세 권의 단축하지 않은 책, ≪경제에 관해 생각하는 방법 입문(How to Think about the Economy: A Primer)≫,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실현되지 않는 것: 규제들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The Seen, the Unseen, and the Unrealized: How Regulations Affect our Everyday Lives)≫, 그리고 ≪생산의 문제: 기업의 새 이론(The Problem of Production: A New Theory of the Firm)≫의 저자이다. 그는 ≪오스트리아학파 현대 안내서(The Modern Guide to Austrian Economics)≫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차세대: 조지프 T. 살레르노 기념 에세이들(The Next Generation of Austrian Economics: Essays In Honor of Joseph T. Salerno)≫을 편집했다. 그는 네 개의 창업 기업을 설립했고 ≪기업가(Entrepreneur)≫ 잡지에 칼럼을 쓴다.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PerBylund.com을 보라.


옮긴이)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


출처) https://mises.org/wire/two-swedes-new-economics-no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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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도헌님의 댓글

김도헌 작성일

노벨 경제학상 그리고 한국인.
1.경성대 스승인신 황수연 교수님께서는 학부시절에 존 내쉬를 주인공으로하는 책과 영화를 수업시간중에 보여주셨다.
2.존 내쉬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고 그의 삶은 나와도 같은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3.그리고 도시생활에서 빈곤층의 끝자락에 몰렸던 나의 가정은 어머님의 식당의 설거지 생활을 통해서 겨우 연명했다.
4.어느날 어머님은 존 내쉬의 사연이 담긴 신문지를 오려오셨다.
5.나와 마찬가지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던 존 내쉬라는 학자가 게임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 했다는 것이다.
6.지금은 어머님께서는 자식 농사 잘못했다고 한탄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
7.그러나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이후에 학문에 관한한 노벨상이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8.그리고 나는 페이스북에도 밝혔듯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기를 원한다.
9.단 한권의 책도 논문도 내지 않았지만 페이스북에 계속 글을 올리는 이유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10.그러나 나에게는 석박사 학위도 없고 이렇다할 연구실적도 없는데 그것을 바라는것은 그냥 꿈일 뿐일까?
11.어머님이 살아계실때에 꼭 성공하고 싶다.
12.그런데 미제스교수도 고든 털럭 교수도 노벨 경제학상을 못받지 않았나?
13.그래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노벨 경제학상을 수상 하리라는 꿈이 있을때는 힘든 농사일도 힘들어도 버틸수 있지 않았나?
14.나는 반드시 죽기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해서 어머님의 목에 노벨상 목걸이를 걸어드리고 싶다.
김도헌 올림.

김도헌님의 댓글

김도헌 작성일

Jhon Nash가 틀렸고 애덤 스미스가 맞다.
1.<개인의 최선이 집단의 이익에 이바지 한다.>는 애덤 스미스가 틀렸다는 존 내쉬의 말은 옳지 않다.
2.경쟁이 치열할수록 개인들의 최선의 행동이 집단의 이익에 이바지한다.
3.존내쉬는 세가지 경우를 들어서 애덤스미스를 반박하고 있다.
4.케이스 1은 모두가 금발미녀를 택하면 금발미녀가 모두를 찬다.
5.케이스 2는 모두가 금발미녀에게 차인후에 금발미녀의 친구들에게 대쉬하면 그녀들에게 차인다.
6.케이스 3은 모두가 금발미녀를 등한시하고 금발미녀의 친구들에게 대쉬하면 모두가 즐겁게 놀수 있다.
7.그런데 모두가 금발미녀를 목표로 둘때에 차선에 만족하는 것이 집단의 이익이라고 해서 그것을 개인과 집단의 이익이라고 할수가 있을까?
8.게임이론은 영합게임Zerosum Game이라면 존 내쉬의 주장이 옳을수도 있다.
9.그러나 경제는 양합게임Positive sum Game이고 케이스 4의 경우처럼 모두가 금발미녀를 무시하고 그녀의 친구들에게 갈때에 배반 전략을 택하고  금발미녀에게 대쉬하면 그 친구는 목표를 이룰수 있다.
10.경제에서 게임이론처럼 개인의 이익은 달라질수 있고 변동되며 집단의 이익도 달라질수 있고 변동된다.
11.차선에 만족하는 것이 내쉬 균형이라면 그 균형을 깨는 것도 또하나의 균형일것이다.
12.그리고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자들의 이익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이익이다.
13.모두가 한분야의 생산자로서 사회적 생산의 일부분을 형성하지만 소비자로서 더 큰 이익을 볼수 있기에
한 분야의 생산자로의 입장보다는 여러분야의 소비자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볼때에 더 큰 이익을 얻는다.
14.금발미녀를 얻는 것은 정태적이며 영합게임이나 경제에서는 동태적이며 양합게임으로 더 작용할때가 많음을 볼때에 존 내쉬 균형은 불안정하다.
15.그리고 내쉬균형을 깨뜨릴때에 더 큰 이익을 얻는다.즉.금발미녀를 차지한다.
김도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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