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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배달에서 MAD(상호확증파괴)와 광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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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4-09-03 04:28 조회118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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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배달에서 MAD(상호확증파괴)와 광기까지 

George Ford Smith, 2024. 07. 02 (이종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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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에는 비밀이 없다. 인간의 생각과 의도에 비밀이 있을 뿐이다. - J. 로버트 오페하이머(J. Robert Oppenheimer)


그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단지 “우유 배달”이었을 뿐이었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로의 비행을 설명하면서 미국 B-29 슈퍼포트리스(전략폭격기-역자주)인 에놀라 게이의 조종사 폴 티베츠 주니어가 이렇게 말했다. 그날 아침, 그의 화물은 “리틀 보이”라는 이름의 원자폭탄이었다. 폭격수인 토마스 페레비 소령은 비행기가 도시 바로 상공을 지나갔을 때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43초 후, 조종사와 승무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리틀 보이”가 지상에서 폭발했다. 임무를 마친 후, 에놀라 게이는 티니안섬의 기지로 돌아갔다.


네. 단지 우유 배달일 뿐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다르게 보았다. 종군기자인 존 허시는 1946년 8월 23일 <뉴요커>에 폭발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사람들의 경험을 자세히 설명하는 긴 기사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우유 배달이 없었다.


“나카무라 부인이 서서 이웃을 바라보고 있을 때, 모든 것이 그녀가 여태껏 본 그 어떤 흰색보다도 더 하얗게 번쩍였다. 그녀는 이웃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어머니의 본능이 그녀를 아이들에게로 이끌었다. 그녀는 단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집은 폭발 중심에서 1,350 야드, 즉 3/4마일 떨어져 있었다) 무언가가 그녀를 들어 올렸고, 그녀는 집의 조각들에 쫓기며 침대 위로 날아가듯 옆 방으로 날아가는 듯했다.”


만약 당신이 다른 은하계에서 방문한 사람이라면 이것이 불안감을 줄 수도 있지만, 지구 주민들 대부분은 “리틀 보이” 임무가 자비의 행위라고 믿고 있다. 공인된 계산에 따르면, 순간적인 대량 학살이 생명을 구했다. 이 믿음이 강해서, 플루토늄 폭탄 “팻맨”이 8월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되었고, 이는 전쟁에서 핵무기가 사용된 마지막 시간으로 기록되었다. 한편 8월 8일에는 소련이 일본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하고, 160만 명의 군대로 일본이 점령한 만주로 쳐들어갔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본의 태도는 약해졌다. 히로히토 천황은 8월 15일에 일본의 항복을 선언했고, 9월 2일에 미국 해군 전함 미주리호에서 공식 항복을 선언했다.


핵전쟁의 첫 시작을 알린 에놀라 게이 승무원들은 그들의 임무를 완료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생명을 구하고 있다는 데 동의했지만, 사람들로 가득 찬 도시를 불태우는 것이 생명을 구하는 행위라는 주장에 대한 설명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은하계의 방문객들은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이곳 지구에서는 인간이 전쟁이라고 부르는 피비린내 나는 교전을 빨리 끝내는 것이 분명하게 필요했다. 레이더 조작사인 조 스티보릭은 티니안으로 돌아가는 비행 중에 느꼈던 큰 충격을 받은 침묵, 그리고 적막을 가르는 한 번의 외침을 회상했다. “신이시여, 우리가 뭘 한 거죠!”


만약 당신이 초강력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사용할 용기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미국은 독일이 이미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어떻게 사용될지는 먹이 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사람들 간에 다르게 나타났다. 랠프 라이코가 썼듯이, “폭격은 아이젠하워와 맥아더를 포함한 미군 고위 장교들에 의해 야만적이고 불필요한 것으로 규탄되었다.”


사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일본은 이미 패배한 상황이며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것은 완전히 불필요했다.... 일본은 바로 그 순간(히로시마 원폭 투하 이전에)에 최소한의 ‘체면’을 잃고 항복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고 사실상 믿었다. 그러나 트루먼은 결정했다. 그의 결정으로 이미 계획된 미국의 침공이 있었더라면 그 침공에서 희생될 가능성이 있었던 5십만 명이나 혹은 그 이상의 미국인 생명이 구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라이코가 지적했듯이 이러한 추정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모든 전선에서 사망한 미국인 총합의 거의 두 배에 달했다.” 누가 이 수치를 확인하고 있었을까?



핵 공격을 피하려는 시도


독일 포츠담 회담((1945년 7월 17일~8월 2일)에서, 트루먼 대통령은 영국과 중국의 지지를 받아 일본이 무조건 항복할 것을 요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고향이 “즉각적이고 완전한 파괴”를 당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7월 16일의 끔찍한 21킬로톤의 트리니티 실험이나 소련의 만주 침공 계획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일본에 그들의 천황이 전범으로서 기소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모든 사실을 공개했다면 일본은 미군의 침공이나 폭탄 투하 없이 항복했을지도 모른다.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일한 과학자들은 일본 공격에 대한 견해가 극명하게 달랐다. 노벨상 수상자인 물리학자 제임스 프랑크가 이끄는 프랑크 위원회는 일본에 대한 기습 공격에 반대하고 그 대신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에서 시위할 것을 제안했다. 그들은 또한 신뢰의 문제를 제기했다. 서방의 자비로운 윤리가 핵 대량 학살과 어떻게 일치하는가? 전쟁 장관 헨리 스팀슨이 트루먼 대통령에게 물었던 것처럼, 미국이 “잔악 행위에서 히틀러를 능가하는 명성을 얻는 것은 불가능한가?”라고 상상할 수 있는가?


맨해튼 프로젝트의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소장인 J.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그의 팀은 “폭탄과 관련해서 직접적인 군사적 사용 외에 수용 가능한 대안은 없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트리니티와 3주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이후 오펜하이머의 환희감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이후 바뀌었고, 그는 군사적 관점에서 그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와는 반대로, 그는 1945년 8월 9일에 있었던 두 번째 공격 이후 “신경 쇠약”에 빠져 있었으며, 점점 더 많은 사상자가 보고되는 것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1945년 10월 25일 아침, ‘원자폭탄의 아버지’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만났다. “대통령님, 제 손에는 피가 묻어 있습니다”라고 오펜하이머가 불쑥 말했다. 이에 대해 트루먼은 이야기의 한 버전(그리고 2003년 영화에서)에서 조롱하듯 그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오펜하이머는 공산당의 동조자로 인정받았고 종종 당원으로 의심받았으며, 원자폭탄보다 천 배 이상 강력한 슈퍼무기가 지배하는 미래를 보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핵무기 개발을 통제하고 소련과의 군비경쟁을 피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1938년 독일에서 과학자들이 우라늄 원자를 실험적으로 쪼갠 후, [헝가리-독일 물리학자 레오] 실라드는 히틀러가 먼저 원자폭탄을 얻는다는 생각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자신의 인맥들 사이에서 경고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실라드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심각한 걱정으로 1939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작성하여 미국에서 연쇄 반응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할 것을 촉구했다. 그의 전기 작가에 따르면, 실라드는 “그가 두려웠던 바로 그 군비경쟁을 시작하기 위해 미친 듯이 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들의 경우, 군비경쟁은 그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이다.


트루먼 대통령은 취임 선서를 하기 전까지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소련이 결코 필적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맨해튼 프로젝트 스파이들 덕분에 그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포츠담에서, 트리니티의 성공 소식을 들은 트루먼은 회담이 끝난 후 스탈린에게 다가가 “미국은 특별한 파괴력을 가진 새로운 무기를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스탈린은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며 “좋군요”라는 듯이 대답했다. 트루먼 대통령의 러시아어 통역관인 찰스 E. 볼렌에 따르면, “여러 해 후, [소련] 원수 게오르기 K. 주코프는 그의 회고록에서 그날 밤 스탈린이 러시아의 원자폭탄 개발 책임자들에게 그 일을 서두르라는 전보를 보냈다고 밝혔다.”



절대적 광기의 통치


초강대국이 억지력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파괴력을 필요로하는 지는 수십 년 동안 변했다. 그렇지만 2012년 원자 과학자 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의 연구에 따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강타한 크기의 핵폭발이 100건만으로도 지구에 핵겨울이 시작되어 소빙하기(1300년~1850년)보다 기온이 더 낮아질 것“이라고 한다. 소빙하기의 특징은 광범위한 기근이었다.


원자 과학자 회보의 핵 노트에 따르면, 2023년 미국 국방부는 3,708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2022년 초 기준 러시아는 4,477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오늘날의 최후의 날 무기는 약 70,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리틀 보이“를 훨씬 능가하며, 그 중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세계는 점점 더 강력해지는 핵무기와 함께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더 이상 핵무기가 마땅히 받아야 할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양심이 의심스러운 소수의 국가 권력자들이 당신이 다음 순간에 살아날 것인지, 아니면 굴뚝 재와 같이 사라질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1950년 비공식 모임에서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시카고 맨해튼 프로젝트 멤버인 엔리코 페르미는 동료 과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질문을 던졌다. ”모두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외계 지성체의 출현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이는 것과 그 존재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모순“을 언급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태양계가 우주의 나머지에 비해 꽤 젊다는 점(138억 년에 대비하여 약 45억 년)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성간 여행이 상당히 쉬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구는 이미 외계인이 방문했어야 했다.“


그 이후로, 거의 모든 사람이 답변을 하게 되었다. 내가 오싹하게 여기는 한 가지는 이것이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지적 생명체는 스스로 파괴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검증을 배제하는 가설이다. 



글쓴이) George Ford Smith

조지 포드 스미스는 전직 메인프레임, PC 프로그래머 및 기술 강사이며, 그리고 변절한 연준 의장에 관한 소설(Flight of the Barbarous Relic)과 돈이 어떻게 절도 도구가 되었는지에 대한 논픽션 책(The Jolly Roger Dollar)을 포함하여 8권의 책을 저술했다.


옮긴이) 이종선 (인제대학교 명예교수, 정치학)


출처) https://mises.org/mises-wire/milk-runs-mad-ma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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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도헌님의 댓글

김도헌 작성일

핵무기는 대한민국을 해방시켰다.
1.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전쟁막바지에 총알받이로 전선으로 끌고 갔다.
2.늙은이들은 동남아에서 강제징용으로 강제로 끌고 갔다.
3.한국의 처녀들은 위안부로 성노예로 전선으로 끌고 갔다.
4.미국이 생각하기에는 일본은 항복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5.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갈아넣어서 옥쇄작전을 펼치더라도 항복할 마음이 없었다.
6.만약 미국이 원자폭탄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일본은 끝까지 군국주의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7.왜냐하면 일본인들은 미국인들이 생각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8.미국은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하지 않았다면 그 일본인들은 절대 항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9.조선인들을 모두 전쟁터로 강제로 끌어대고 징용으로 끌고가서 몰살시키는 일이 있더라도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전쟁의 포기를 모르는 악질들이었다.
10.미국인들은 괴로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11.비폭력시위를 해도 총으로 진압하던 잔악한 일본인들을 조선반도에서 모두 몰아낸것만으로도 미국은 일본인에게 조책감을 가질 필요도 이유도 전혀 없다.
12.식민지에서 독립으로 이끈 핵폭탄 투하가 조선을 독립시키고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13.하루빨리 대한민국도 핵무장을 자체적으로 해서 더 이상 외세의 위협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도헌 올림.

김도헌님의 댓글

김도헌 작성일

핵무기는 대한민국을 해방시켰다.
1.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전쟁막바지에 총알받이로 전선으로 끌고 갔다.
2.늙은이들은 동남아에서 강제징용으로 강제로 끌고 갔다.
3.한국의 처녀들은 위안부로 성노예로 전선으로 끌고 갔다.
4.미국이 생각하기에는 일본은 항복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5.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갈아넣어서 옥쇄작전을 펼치더라도 항복할 마음이 없었다.
6.만약 미국이 원자폭탄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일본은 끝까지 군국주의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7.왜냐하면 일본인들은 미국인들이 생각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8.미국은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하지 않았다면 그 일본인들은 절대 항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9.조선인들을 모두 전쟁터로 강제로 끌어대고 징용으로 끌고가서 몰살시키는 일이 있더라도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전쟁의 포기를 모르는 악질들이었다.
10.미국인들은 괴로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11.비폭력시위를 해도 총으로 진압하던 잔악한 일본인들을 조선반도에서 모두 몰아낸것만으로도 미국은 일본인에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이유도 전혀 없다.
12.식민지에서 독립으로 이끈 핵폭탄 투하가 조선을 독립시키고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13.하루빨리 대한민국도 핵무장을 자체적으로 해서 더 이상 외세의 위협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도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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