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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사회주의는 바로 전체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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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7-29 07:07 조회1,12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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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사회주의는 바로 전체주의다

William L. Anderson, 2025, 07. 17. (김행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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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 조란 맘다니(Zohran Kwame Mamdani)가[역주1] 민주당의 뉴욕시장 후보자 예비선거에서 뜻밖의 승리를 얻은 것에 관해 기사를 쓴 후, 한 독자가 분노에 찬 이메일을 내게 보내왔다. 그 독자는 맘다니는 "민주적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이며,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알렉산드라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은 "사회적 민주주의자(social democrats)"라고 주장했다.[역주2] 글을 보낸 사람은 그들 모두의 유일한 목적은 뉴욕과 미국을 덴마크로 만드는 거라고 내가 믿기 바란 것이 분명했다.


어쩄든,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 중 하나이지 않은가? 최저임금이 22달러(*약 3만 3백원) 아닌가? (사실, 덴마크에는 연방 최저임금이란 게 없지만 말이다.) 훌륭한 복지 혜택과 개인의 자유가 많이 허용되고 있지 않는가. 따라서, 미국을 덴마크로 바꾸려는 유형의 정치인을 뽑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오로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몇 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 덴마크는 사회주의 국가와는 거리가 멀고 그 나라엔 사회주의 계획 경제도 없다. 이 점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오카시오-코르테스, 샌더스, 맘다니는 모두 실질적인 정부 계획과 정부가 소유권을 가질 것을 요구했으며, 맘다니는 그 보다 훨씬 더 나아갔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온라인 잡지 《자코뱅(Jacobin)》은 최근 맘다니가 완전한 사회주의 경제를 요구한다며 아래처럼 그를 칭송한 바 있다.


"조란 맘다니가 사회주의의 궁극적 목표, 즉 경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지지한다는 것에 아무도 놀랄 거 없다. 그러나 그가 승리한 이유는 사회주의 정치에 노동자들이 직면한 생계비 위기에 대한 실제적인 해결책을 결합했기 때문이다.


조란 맘다니는 2021년 미국 청년민주사회주의자(YDSA: Young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대회에서 이 단체가 바라는 여러 단기적 개혁 조치를 논의했다. 그러나 그는 이 단체의 당면 목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제시하는 동시에, 사회주의 정치의 "궁극적 목표"가 "생산 수단을 장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주, 이 영상은 우파의 소셜 미디어에 다시 나타나, 뉴욕시장 예비선거에서 이겨 민주당의 뉴욕시장 후보로 선출된 맘다니가 꼼짝할 수 없을 증거로 다루어졌다.


《내셔널 리뷰》는 이 영상에 대해 "햐, 이건 말 그대로 완전히 공산주의네!"라는 제목의 짧은 기사를 게재했다. CNN 방송의 스콧 제닝스는 맘다니가 "볼셰비키의 언어를 쓰고 있다"고 동의했다. 니콜 말리오타키스(Nicole Malliotakis) 하원의원(공화당, 뉴욕)은 이 발언이 "맘다니가 한 가장 무서운 말"이며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교과서에서 그대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주의 정치의 궁극적 목표를 말한 이 발언이 왜 충격적인 것이 되나?"


이 짧은 구절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으며, 소위 민주적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s)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자코뱅당이 프랑스 혁명 동안 정치적 테러를 계획하고 실행한 최초의 정치 단체였고 대규모 처형까지 자행한 점을 감안하면, 사회주의자들이 자신을 자코뱅과 동일시하려는 것은 그들이 가진 의도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다음으로, "경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국가가 "생산 수단을 장악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민주적(democratic)"이라는 신념이 전체주의적이고도 폭력적이라는 본질을 말해준다. 강제 없이는 아무것도 "몰수"할 수 없다. 《자코뱅》 편집자 바스카르 성카라(Bhaskar Sunkara)는 최근 인터뷰에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를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고 과시했다. 


미국 사회주의자들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본성을 의심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최근 시카고에서 열린 〈사회주의 2025〉 대회에서 연사들이 줄지어 미국 사회의 모든 분야를 전반에 걸쳐 전체주의식으로 통제할 것을 제시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연사들과 대의원들(그들 모두는 제복의 일환으로 N-95 혹은 K95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이 제시한 제안들은 볼셰비키 혁명 및 폴 포트(Pol Pot)의 캄보디아 테러와 같은 "민주적" 사회주의 운동에서 따온 것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 가족 단위를 코뮌(commune)으로 대체하는 것(이것은 영화 《킬링 필드》의 한 장면을 연상시켜 주는데, 거기서 공산주의 단체 크메르루주 감시자들이 피지배자들에게 가족에게 X자를 그린 그림을 보여준다).

•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공립 학교를 통해 젊은 세대를 "과격화"하도록 만드는 것.

• 고등 교육을 대학과 사회를 약화시키는 도구로 계속 활용하는 것.

• 현재의 미국을 와해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로 대체하여, 국가가 모든 것을 완전히 통제하는 중앙집권적 체제를 갖추는 것. 


데이비드 사이퍼(David Sypher)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근본적 신념은 분명하다. 즉, 미국 체제를 이루고 있는 자본주의, 경찰 제도, 능력주의, 결혼은 모두 본질적으로 억압적인 것이며, 그것은 붕괴되어 "공평한(equitable)" 제도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맘다니가 최근에 있은 사회주의 대회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는 개인이 주택을 소유하는 것을 종식하고, 개인이 주택에서 사적으로 거주하는 것으로부터 공동 주거로 대체할 것을 촉구해 왔다. 그는 또한 주택의 사적 소유와 주택 건설업체의 이익 추구가 무주택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1965년 영화 <닥터 지바고(Dr. Zhivago)>에서 남자 주인공 유리(Yuri)가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 후 전쟁터에서 자기 집으로 돌아오니 자기 집을 여러 가정이 나누어 쓰고 있음을 알게 되는 장면이 연상될 것이다).


맘다니가 국가가 생산 수단과 사적 주택을 모두 몰수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해 왔기 때문에, 그의 세계관과 가장 극단적인 집단주의자들의 세계관 사이에 차이는 거의 없다. 버니 샌더스와 오카시오-코르테스가 그를 지지했다는 사실도 그들의 신념을 잘 보여준다. 그들이 단지 미국을 좀더 덴마크처럼 만들려는 것뿐이라고 믿으라고?  만약 샌더스, 맘다니, 오카시오-코르테스가 그들이 원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갖게 된다면, "소수의 가진 자들에 대한 투쟁" 집회에서 환호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를, 그리고 그것이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임을 제대로 이해하는지를 궁금하게 여겨야 한다.


미국 민주당 안에서 맘다니 및 소위 민주적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를 지지하지 않는 나머지 사람들은 어떠한가? 이들 중 상당수는 규제를 받는 자본주의로부터 개인적 부를 얻는 간섭주의 체제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으며, 만약 민주당 안의 좌파가 원하는 대로 미국이 정말로 완전한 사회주의가 된다면 자신들이 궁핍한 상태로 전락할 것임을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민주당 내부에서 맘다니의 캠페인에 저항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민주당은 90년 전에도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 사회주의 작가 업턴 싱클레어(Upton Sinclair)는 1934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빈곤을 일소하라(abolish poverty)"는 공약으로 엄청난 예상 밖 승리를 거두었다. 스티븐 F. 헤이워드는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에 다음과 같이 썼다: 


"싱클레어는 "캘리포니아 빈곤 종식"을 의미하는 EPIC(End Poverty in California)이라는 약어로 알려진 급진적 공약으로 출마했다. EPIC이 제안한 것에는 보편적 노령 연금(사회보장 전), 소련식 집단 농장, "이윤(profit)이 아니라 사용(use)을 위해 생산하는" 국영 기업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아마 재산 압류까지 들어있을 것이다." 


(맘다니가 뉴욕에 집단 농장을 설립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라. 그것은 그 도시 내에 농장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1934년 당시 많은 미국인이 소위 "공산주의의 소련식 실험"에 매료되었으며, 이는 나중에 있었던 냉전 기간보다 이 시기 미국에서 훨씬 더 높게 평가되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당시 싱클레어가 예선에서 승리한 결과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싱클레어의 급진적인 선거 운동이 자신의 뉴딜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을 일으킬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화당 주지사이던 프랭크 메리엄은 인기가 없었으며, 많은 민주당원 및 공화당원은 다른 후보들에 대한 대항마로 "독자" 후보인 레이먼드 헤이트(Raymond Haight)를 출마시키고자 했다.


결국, 당시에는 정치적으로 아직 급진화되지 않았던 영화계가 싱클레어에 대한 수사적 공격과 방송 공격을 강화했으며, 이것이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다. 메리엄은 선거에서 승리했고, 사회주의자들은 다른 곳에서 선거 승리의 기회를 찾아야 했다.


시카고에서 제시된 맘다니의 강령 및 사회주의 "비전(vision)"과 마찬가지로, 싱클레어의 정치적 약속은 강제와 선전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었다. 루드비히 폰 미제스가 1세기 전에 《사회주의: 경제학적 및 사회학적 분석》에서 쓴 것처럼, 사회주의는 그 주창자들이 말하는 방식으로는 작동할 수 없다. 볼셰비키 혁명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보아왔듯이, 사회주의자들은 노동력과 자원을 자신이 원하는 어떤 목적으로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시도는 참담하게 실패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은 계속 나아가는 중이며, 이제는 정치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민주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충격을 누그러뜨리려 하나, 사회주의는 폭력 및 폭력의 위협 없이는 실현할 수 없는데, 이는 타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자원을 강제로 빼앗아 경제적 결과를 바꾸기를 요구하는 것이 바로 사회주의이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적 사회주의는 또 다른 형태의 전체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옮긴이 주)


[역주1] 

맘다니(Zohran Kwame Mamdani)는 우간다 출신의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로 뉴욕의 민주당 하원의원이다. 이미 민주당 내의 사회주의자로 잘 알려진 버니 샌더스,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지지를 받아 2025년 뉴욕 시장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기성 정치인을 밀어내고 민주당 후보자로 예상 밖으로 선정되었다. 그의 부친은 가나의 초대 대통령이자 좌파 독재자였던 크와메 은크루마를 좋아해 맘다니의 중간 이름에 크와메를 붙였다. 맘다니 돌풍은 오늘날 노골화된 좌파 포퓰리스트의 인기를 보여준다.


[역주2] 

"사회적 민주주의(social democracy)"는, 자본주의를 전제로, 다양한 정부 규제와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통해 자본주의를 개혁하여 불평등을 줄이려는 이념이다. 이에 비해, "민주적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는,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대체하고자, 민주주의라는 정치 과정을 통해 노동자의 소유권, 협동조합 기업, 중요산업의 국유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확립하려는 이념이다. 사회주의자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인정하되 노동자 계급을 위해 그것을 인간화하자는 것이고, 민주적 사회주의는 선거 등의 민주적 제도로 사회주의 체제를 확립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학문상의 의미 차이와 현실 정치상의 용례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한국 정치 현실에서도 사민당, 민사당 등의 정당명이 사회적 민주주의, 민주적 사회주의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도 전혀 아니다. 심지어 정치인 스스로 자신의 이념 정체성으로 두 개념을 분별없이 쓰기도 한다. 사회적 민주주의나 민주적 사회주의는 단지 사회주의 사회를 만든다는 상위 목표를 달성해가는 단계에서 나타나는 전술적, 시간적 차이일 뿐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따라서, 기본적 복지를 어느 정도 인정한 하이에크가 《노예의 길》에서 통렬히 반대한 대상은 사회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적 사회주의다. 물론, 노직(Nozick)에 이르면 하이에크의 부분적 복지주의, 사회적 민주주의조차도 많은 비판을 받는다. 


글쓴이) William L. Anderson

윌리엄 앤더슨은 프로스트버그 주립대학교(Frostburg State University)를 퇴임한 경제학 교수로 미제스 연구소(Mises Institute)의 선임 편집자이다. 최근(2025. 7. 10.) 미제스 와이어에서 "왜 모든 자연재해가 정치화되는가?"라는 글을 통해, 재난을 정치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그 피해자를 의인으로 우상화하고 불균형적 보상을 안기는 한국 좌파 정치 관행에도 함의를 주고 있다. 그는 테네시 대학교 학부생이었던 1974년 육상 트랙팀의 일원으로 NCAA 야외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바 있다. 


출처) https://mises.org/mises-wire/democratic-socialism-totalitarianism


옮긴이) 김행범 (부산대학교 명예교수. 공공선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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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도헌님의 댓글

김도헌 작성일

사회주의 국가는 빈곤과 기아로 실패했다.
1.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자는 과거 역사의 실패와 실수를 반복할 뿐이라고 앤터니 피셔경은 주장했다.
2.사회주의 국가들은 빈곤과 기아와 가난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3.자기가 낳은 자녀들에게 배고픔을 선사하고 국민들을 강제로 먹을수 없게 만들어서 다이어트 하게 만드는 것이 사회주의의 본질이다.
4.실제로 일본에서는 과거 한때에 마르크스의 경제학이 유행했었다.
5.그러나 일본이 여행 자유화로 사회주의 국가들의 모든곳을 가보니까 그곳은 지상의 낙원이 아니라 자신들보다도 못살고 못먹고 못입었다.
6.그래서 자연스럽게 일본에서는 마르크스 경제학이 사라졌다.
7.그런데 미국에서 이런 마르크스의 경제학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겠다는 허풍과 참사는 현실을 외면한 정신병의 일종이다.
8.소련식 집단 농장은 생산성이 낮아서 소련의 조그마한 자기텃밭에서 감자와 계란 그리고 우유의 80퍼센트가 생산되어 나왔다.
9.이윤을 위한 생산이 아닌 사용을 위한 생산을 하겠다고 하지만 이윤이 사용을 위한 신호를 주어서 어디 어디에 사용되는지 알게 해준다는 사실을 모른다.
10.생산수단이 중앙집중화된 사회에서 보다는  생산수단이 각 개인에게 분산되고 소유되어 있을때에 기회를 포착해서 기민성 있게 기업가정신으로 이윤을 벌기위해서 자유롭게 실험하고 투자할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11.생산수단이 중앙집중화되면 아무도 경제적 진보가 발생할수 있는 기회가 와도 기민성 있게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수 없다는 점을 모르고 자신이 가진 생산수단이 있어야만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 항상 극진히 노력할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못한다.
12.사회주의는 빈곤과 가난으로 가는 지름길이지 가난과 빈곤을 근절할수 없고 그것이 사회적 민주주의 이든가 민주적 사회주의이든가 하는 말장난에 불과할뿐 근본은 사회주의를 민주주의로 실현하고자 하는 양의 탈을 쓴 늑대임을 알아야 한다.
김도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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