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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협동의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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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9-02-14 16:25 조회1,169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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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협동의 도덕

Bettina Bien Greaves, 2018. 12. 13 (황수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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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The Freeman)≫ 1973]


상이한 철학 이론들 사이의 많은 불일치들은 수년에 걸쳐 많은 혼동을 야기했다. 불행하게도, 학생들이 그것들을 총명하게 식별하고 자유, 도덕 그리고 사회적 협동을 촉진하는 윤리 규범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기본 원리들을 설명하는 선생들과 교과서들은 너무나 소수다.


따라서 헨리 해즐릿(Henry Hazlitt)은 그 주제에 논리와 명료성을 가져온 데 대해 특별한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의 책, ≪도덕의 기초(The Foundations of Morality)≫는 1964년 처음 출판되었다. 수년간 절판된 후에, 그것은 내시(Nash)와 인문학 연구소(Institute for Humane Studies) 덕분에 다시 이용될 수 있게 되었다. [미제스 연구소는 경제 교육 재단(Foundation for Economic Education)에 의해 2007년에 출판된 판을 제공한다.]


저자는 주로 경제학자, 인간 행동의 연구자이다. 그 결과, 그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강력히 옹호하는 사람이다. 그는 오랫동안, 자유 시장 경제학의 “학장(dean)”이었던, 루트비히 폰 미제스 교수의 가까운 개인적인 친구이자 동료였는데, 그는 미제스에게 지적인 빚을 크게 졌음을 인정한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는 사회적 협동의 윤리를 논하는 데 적임이다.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뉴스위크≫, ≪자유인(The Freeman)≫, ≪내셔널 리뷰≫ 그리고 많은 다른 것들에서) 평론가, 서평가 그리고 칼럼니스트로서 보냈던 그의 다년의 “도제 기간(apprenticeship)”으로 그는 복잡한 문제들을 간단하게 설명할 준비를 잘 갖추었다.


독자는 진술된 견해들과 개념들에 대해 때때로 잠시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며, 되돌아보기를 원할지 모르지만, 저자의 추론은 명백하고, 그의 산문은 모호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장(章)들은 매우 기쁘게 짧다.


해즐릿 씨의 입장은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올바르게 이해될” 때, 갈등이 아니라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쓰는 그의 목적은 현대 경제학과 법학 원리들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설명되고 방어될 수 있을 “법, 도덕 그리고 예절의 ‘통일된 이론(unified theory)’을 진술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해즐릿 씨가 성공했다는 데 동의할 것이라고 이 서평자는 믿는다. 그는 많은 철학자들의 견해들을 정리하였고 그것들을 면밀한 논리를 가지고 분석했다. 그는 그것들 사이의 많은 모순들을 설명했고, 따라서 많은 혼동을 해결했다. 그는 오늘날의 “관대한(permissive)” 분위기에서 아주 흔히 무시되는 윤리 원칙들의 이해에 기초하여 일관성 있는 도덕 철학을 체계화했는데, 이 윤리 원칙들은 평화로운 사회적 협동과 자유 기업 생산을 촉진한다.


해즐릿 씨는 우리의 복잡한 시장 경제에는 평화롭고 자발적인 사회적 협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시장의 보존은 대규모 생산과 따라서 우리 대부분의 바로 그 생존에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협동은 개인들이 자기들의 다양한 개인적인 목적들을 달성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바로 그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이것은 사회적 협동이 또한 동시에 충분히 가치 있는 목적이기도 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해즐릿 씨가 스스로 말하게 하자.


"우리 각각에게 사회적 협동은 물론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우리의 모든 다른 목적들의 실현에 아주 중심적이고, 아주 보편적이며, 아주 필수불가결한 수단이어서 그것을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간주하는 데, 그리고 심지어 마치 그것이 윤리의 목적인 것처럼 그것을 취급하는 데, 해(害)가 거의 없다. 사실상,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무엇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큰 만족이나 행복을 줄지 알지 못한다는 바로 그 이유로, 우리의 행동들이나 행동 규칙들의 최상의 검증은 우리 각각이 자기 자신의 목적을 가장 잘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협동을 그것들이[우리의 행동들이나 행동 규칙들이] 촉진하는 정도이다.


사회적 협동이 없으면 현대인은 자기가 그것을 가지고 달성했던 목적들과 만족들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엄청난 다수의 우리들의 바로 그 생존은 그것에 달려 있다."


그 책에서 개설(槪說)된 철학 체계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의 한 형태인데, “행동들이나 행동 규칙들이 그것들의 결과에 의해 그리고 인간 행복을 촉진하는 그것들의 경향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고 그것이[그 철학 체계가] 주장하는 한에서” 그렇다.


그러나 해즐릿 씨는 더 짧은 용어, “유틸리즘(utilism)”이나, 아마도 일반 규칙들을 시종일관되게 고수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할, “규칙 유틸리즘(rule utilism)”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한다. 그는 또한 서술되는 윤리 체계에서 사회적 협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더욱 충분하게 반영한다고 자기가 생각하는 두 가지 다른 가능한 이름―“상호주의(mutualism)”나 “협동주의(cooperatism)”―도 제안한다.


특정 규칙이나 행동이 이 윤리 체계와 일치하는지 혹은 불일치하는지 판단하는 기준은 항상 그것이 사회적 협동을 촉진하는지 여부이다. 해즐릿 씨는 그 명제로부터 사회적 협동이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고 추론한다. 때로는 개인적인 단기 이득을 위해 거짓말하거나, 속이거나, 강도질하거나, 살인하고 싶을지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사회적 협동의 더 장기적인 이점에 관해, 즉 거짓말하거나, 속이거나, 강도질하거나, 훔치는 것을 억제하도록, 보통 설득될 수 있다.


사실상, 다른 사람들의 공격에 대비해 보호되는 것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적극적인 협동을 원하기도 할, 가장 자기중심적인 사람조차도 약속을 어기고, 속이고, 훔치고, 습격하고, 살인하는 것을 금하는 일단의 (법적 규칙들뿐만 아니라) 도덕 규칙들을, 그리고 덧붙여서 협동, 도움이 됨, 그리고 친절을 요구하는 일단의 도덕 규칙들을, 방어하고 지지하는 것이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고 여긴다.


한 사회의 지배적인 도덕률은 언어나 “관습법(common law)”과 비교된다. 사회는 개인에게 도덕률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세기에 걸쳐서 조금씩 애써 만들어진 일단의 규칙들이다.


"우리의 도덕 규칙들은 계속적으로 틀이 잡히고 수정된다. 그것들은 “사회(society)”라고 불리는 어떤 추상적이고 실체가 없는 집합체에 의해 틀이 잡혀서 그 다음 어떤 면에서 사회와 별개인 “개인(individual)”에게 부과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칭찬과 비난, 찬성과 불찬성, 약속과 경고, 보상과 처벌에 의해) 서로에게 부과하고, 우리 대부분은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그것들을 스스로 받아들인다.


이 도덕률은, 언어ㆍ종교ㆍ예절 및 법처럼, 자생적으로 자랐다. 그것은 태고의 세대들의 경험의 산물이고, 수백만의 사람들의 상호 관계와 수백만의 마음들의 상호 작용의 결과이다. 상식의 도덕은 일종의 관습법인데, 보통의 관습법보다 무한히 더 넓은 관할을 가지고 있고, 실제적으로 무한히 많은 특정 사례들에 기초하고 있다. ... 전통적인 도덕 규칙들은 ... 인류의 경험과 도덕적 지혜를 결정(結晶)시킨 것이다."


그러나 종교에 관해서는 어떤지 라고 당신이 말하는가? 도덕률이 종교적 기초에 의거해야 할 필요가 없는가? 이 책의 근본적인 주제는, 언급되었듯이, 사회적 협동을 촉진하고 보존하는 윤리 규범을 설명하고 변호하는 데 이성과 논리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종교를 무시하지 않는다. 그는 세계의 대(大)종교들 사이의 유사점들과 그것들 중 약간에서의 모순점들에 주의를 환기한다. 비록 항상도 아니고 반드시도 아니지만, 종교와 도덕은 아주 흔히 서로를 보강한다고, 그는 말한다. 여기에 그것들의 관계에 관한 그의 서술이 있다.


"인간 역사에서 종교와 도덕은 때로는 나란히 흐르고, 때로는 합쳐지고, 때로는 갈라지고, 때로는 독립적인 것 같고 때로는 상호 의존적인 것 같은 두 시내와 같다. 그러나 도덕은 어떤 현존하는 종교보다도 더 오래고 아마도 모든 종교보다도 더 오래일 것이다. 종교적 신념이 [도덕률에]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니지만 ..., 그것은 현재의 문명 상태에서는 존재하는 [도덕률] 준수를 얻는 데 강력한 힘으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도덕을 지원하는 가장 강력한 종교적 믿음은 나에게는 ... 신(a God)에 대한 믿음인 것 같은데, 신은 우리의 모든 행동, 우리의 모든 충동 그리고 우리의 모든 생각을 보고 알며, 우리를 엄격히 공정하게 판단하며, 신(He)이 우리의 착한 행동에 대해 우리에게 상을 주고 우리의 나쁜 행동에 대해 우리에게 벌을 주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의 착한 행동을 승인하고 나쁜 행동을 비난한다.


그렇지만 이 종교적인 신념의 진실을 선언하는 것이나 그것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도덕 철학자의 기능이 아니다. 그[도덕 철학자]의 기능은, 오히려, 모든 도덕의 합리적 기초를 역설하고, 그것이 어떠한 초자연적인 가정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도덕의 규칙들이 이러한 우리의 현 생활에서 인간 협동, 행복 그리고 복지를 가장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는 행위 규칙들이거나 [행위 규칙들]이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해즐릿 씨는 자연권, 자연법, 정의, 이기심, 그리고 이타주의; 옳음, 그름, 진리, 정직, 의무, 도덕적 의무, 자유 의지 대 결정론, 예절바름, 그리고 “악의 없는 거짓말(white lies)”과 같은 많은 당혹케 하는 견해들과 개념들을 논한다. 본 서평자가 그랬듯이, 이 문제들에 관해 심사숙고했지만 만족스러운 결론들에 도달하지 못했던 어느 누구라도 틀림없이 그의 분석들과 논평들이 자극적일 뿐만 아니라 계몽적이기도 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 책은 이른 그리고 최근의 철학자들의 저작들로부터 인용한 많은 인용문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저자는 항상 그것들을 검토하여 그것들이 사회적 협동과 일치하는지 조사한다. ―동어반복(tautology) (동일한 개념을 다른 말로 반복하는 것), 행복설(eudaemonism) (행복이 모든 인간 행동의 최종 목적이라는 학설) 그리고 목적의(teleotic) (끝, 설계, 목적 혹은 최종적 원인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부터 유래한 형용사) 같은―몇 개의 전문적인 철학 용어들을 제외하고는, 독자들은 책에 있는 어떤 것도 이해하기 정말로 어렵다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저자의 사고 방향을 따라감에 따라, 그들은 이성과 논리가 도덕을 방어하러 온다는 것; 질서가 그리고 상식의 윤리 규범이 철학적 혼란에서 진화한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해즐릿 씨는 오랫동안 저명한 자유 시장 경제학자―최상의 한 명―이었다. 그의 입문 ≪하나의 교훈의 경제학(Economics in One Lesson)≫은 장기간의 베스트셀러이다. 면밀한 케인스 비판인 ≪“신경제학”의 실패(The Failure of the “New Economics”)≫는 경제 이론에 대한 진정한 공헌이다. 1964년에 ≪도덕의 기초(The Foundations of Morality)≫의 출판으로, 그는 도덕 철학자로서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공적을 추가했다. 그것을 다시 출판하게 되어 기쁘다.


요약하면, 저자는, 서평 중인 책이 나아감에 따라, 윤리 규칙들이 자의적이지도 비논리적이지도 않다고 계속 반복해서 설명한다. 그것들은 그저 견해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장기간에 걸쳐 발전되었으면서 실행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도덕 규칙들이다. 그것들은 시종일관되게 고수되어야 하고, 만약 그것들이 고의로 위반되면, 사회적 협동을 손상시킬지 모른다.


모든 사람이 “자기 식으로 하도록(to do his own thing)” 부추겨지고 다른 사람들의 권리들을 존중할 긴급한 필요를 깨닫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오늘날의 관대함의 시대(age of permissiveness)에, 일단의 윤리 규칙들을 시종일관되게 고수하는 것이 사회적 협동을 증진하고 사회의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철학자는 드물다.


아마도 자기의 바로 그 연구 분야가 사회적 협동의 역할을 포함하는 자유 시장 경제학자는 이 입장의 논리를 설명할 가장 적합한 사람일 것이다. 이 책은 수세기에 걸쳐 살아 있을 것이다.



글쓴이) Bettina Bien Greaves

베티나 비엔 그리브스는 Ludwig von Mises Institute의 선임 학자이다. 그녀는 미제스(Ludwig von Mises)의 세미나에 참여했고 수년 간 미제스의 조원으로 그와 함께 일했다.  


옮긴이)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


원문) https://mises.org/library/morals-human-coop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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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도헌님의 댓글

김도헌 작성일

1.종교와 도덕심 그리고 관용과 같은 정신은 자유시장경제의 풍요로움과 부유함 그리고 경제적 자유와 사적 재산권이 만들어온 시장경제의 마법과 같은 것입니다.

2. 우리의 처지가 마치 자신의 자녀들에게 아무것도 줄수 없고 자신의 자녀들을 계속 굶주리게 만든다면 전쟁은 피할수  없는 것이고 종교와 도덕심 그리고 관용의 정신은 아무런 역할을 못할것이다.

3.광범위한 제휴의법칙이나 전세계적인 노동분업의 원인도 적어도 자신의 자녀들을 굶주리지 않게 하기 위한
조금의 삶의 부가 생길수있다는 예측에서부터 시작된다.
왜냐하면 아무도 자신의 자녀들을 굶주리게 하고 싶어하지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아니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열심히 일하고 시장경제에 자신의 노동과 눈물과 땀을 바쳐서 고ㅡ환 과정에서 자신의 몫을 일한다.자신의 자녀가 굶주리지 않을때까지.

4.우리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는 1960년대까지 보릿고개를 겪어왔다. 이 보릿고개라는 가난을 벗어나는 사상이 무엇이든지 우리는 모두 가난과의 싸움에 이기는 길이 온인류의 바람이었다.
그  가난의 길을 부유의  길로 가능하게 해준것은 사적 재산권에 기반한 자유시장경제에서의 교환과 전문화 그리고 자유무역을 통한 자유주의 사상이었다.

5.이러한 자유주의 사상이 전쟁의 원인인 가난을 벗어나게 하고 평화를 유지해왔다.그런데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에서는 자유주의가 있어도 서로 교환에 참여하는 이웃국가들끼리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6.그 이유는 자유주의 사상이 평화를 가져오지않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가 자유시장에 자꾸 간섭하고 개입해서 시장의 결과를 정부의 결과로 바꾸어서 국가간의 갈등을 부추겨서 전쟁을 불러오기 때문임을 현실주의 정치학은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제시언 김도헌올림 폭스바겐

ㅇㅇ님의 댓글

ㅇㅇ 작성일

어렵고 좋은 글은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자유만 옹호하고 있음을 깨다는 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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