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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거래, 그것이 뉴딜(New Deal)이다 - 개인적 권리에 대한 루즈벨트의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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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4-07-09 08:27 조회5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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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거래, 그것이 뉴딜(New Deal)이다 - 개인적 권리에 대한 루즈벨트의 공격

David Gordon, 2023. 12. 29 (박종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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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의 권리장전과의 전쟁: 프랭클린 D. 루즈벨트의 집결수용소, 검열, 그리고 대대적 감시라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David T. Beito, The New Deal’s War on the Bill of Rights: The Untold Story of FDR’s Concentration Camps, Censorship, and Mass Surveillance, Independent Institute, 2023; x + 379 pp.)]



이 칼럼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를 존경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자로서 데이빗 베이토는 이 걸출한 책에서 우리에게 자신의 교수 동료들 대다수가 루즈벨트를 위대한 대통령들 중에서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에 버금갈 사람이라고 꼽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를 이 반열에 놓는 사람들은 보통 루즈벨트가 자유와 “보통 사람”에 대해 헌신했음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를 그렇게 볼 때 한 가지 어려움에서는 빠져나올 수 없었다. 루즈벨트는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계 사람들 11만 2,000명을 집결수용소(concentration camp)에 투옥시키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이 집결수용소와 관련하여 베이토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일본계 미국인들이 처한 조건은 나찌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조건들과는 사뭇 다른 세계였지만, “집결수용소”라는 딱지는 여전히 붙여졌다. 수용 인원의 압도적인 다수는 온전히 협력했지만, 전쟁이주청(WRA [War Relocation Authority])과 군부는 협력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력을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피수용자 모두가 담장에서 최소한 3미터는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을 포함해서, 규칙들은 포괄적이었다. 전체적으로, 병사들은 무장하지 않은 7명의 수용자에게 총을 쏴서 죽였다. 대부분은, 실제로 그랬건 아니면 그랬다고 여겨졌건, 포장된 인도를 따라 걷는다는 것과 같은 소소한 지시사항을 준수하지 못했던 것 때문이었다. 


루즈벨트를 지지하는 역사학자들은 그를 변명해주려고 노력하는데, 그를 “그렇게나 많은 다른 미국인들처럼, 유감스럽게도 그 순간의 광기에 휩쓸려버렸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보고 있다. 베이토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데, 그는 “너무나 자주 빼먹는 것은, 루즈벨트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들을 틀지웠거나 만들어냈던 결정적인 역사 행위자”였다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여기에 이런 식의 일을 하는 역사학자가 루즈벨트를, 다른 사람들이 충동질해 왔던 일의 전개들에 수동적으로 반응했던 사람이 결코 아닌, 원모심려의 지도자로 그려내는 데 열중이구나 하고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베이토는 인상 깊게도 철저한 조사연구를 통해서 루즈벨트의 순수 일본인 억류가, 그의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 깊게 자리 잡은 반일 편견에서 순수하게 기원하였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루즈벨트의 일본계 미국인 처리는 탈선에 그치는 정도가 아니었다. 비록 그가 자주 자유(freedom)를 말하긴 했지만, 그는 그가 구상한 길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의 권리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나는 루즈벨트가 자유(liberty)에 대해서 했던 공격 중 가장 심각했던 것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길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탄압하려는 그의 노력, 그리고 일단 그가 전쟁에 참여한 뒤에는 추축국들(樞軸國, Axis powers)들이 무조건적인 항복을 하지 않더라도 그 전쟁을 끝내려고 했던 사람들을 탄압하려는 그의 노력이 그것이었다. 


루즈벨트에게 2차대전 참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나찌 동조자들이었다. 루즈벨트가 승인한 것이 명백한데, 부통령 후보 헨리 월라스(Henry Wallace)는 194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웬델 윌키(Wendell Willkie)에게 먹물을 뿌려버렸다. 부통령 후보 월라스는 “‘토종 전체주의 조직들이 자기 추종자들에게 히틀러가 원하는 … 사람에게 투표하라고 몰아갔다’라는 특기할 만한 주장을 했다. 월라스는 더 나아가 윌키를 조롱하기를, 공화당 후보가 ‘자신의 당선 때까지는 그리고 베를린에서 축하 종이 울려질 때까지는 자신의 나찌 지지가 숨겨지기’를 바랬다고 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저주는 윌키가 루즈벨트 자신이 지지했던 것 못지않게 동맹국들(Allies)에 대해 지지를 보였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기묘하기까지 하다. 


미국제일주의위원회(The America First Committee (AFC))도 루즈벨트의 길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루즈벨트는 로버트 우드 장군(General Robert Wood), 찰스 린드버그 대령(Colonel Charles Lindbergh)을 포함한 지도적 인사들을 괴롭히는 식으로 인상적인 반응을 했다. 그가 보기에 그 조직 전체가 근절되어야 할 범죄 음모단이었다: “1940년 루즈벨트는 에드가 후버(J. Edgar Hoover, [1895~1972, 1924~1935 미국 수사국 국장, 1935~1972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 역임])에게 미국제일주의위원회 자체뿐만 아니라 제럴드 나이 국회(상원)의원(Senator Gerald Nye) … 버튼 휠러(Burton K. Wheeler) 등 주요 구성원과 후원자들까지도 감시하라고 명령했다. … 후버는 이 개인들에 대한 정기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보냄으로써 그 명령에 따랐다.”


휠러는 루즈벨트의 외교 정책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자 중 하나였다. 특기할 만한 것은 그가 대출 및 물융법(Lend-Lease Bill)에 대해 미국 소년 4명 중 1명을 유럽 혹은 아프리카 땅 아래에 파묻어버리는 AAA급 뉴딜 외교정책“이라고 공격했다. 루즈벨트는 화가 나서 대답하기를 이 말은 우리 세대에 공적인 생활을 하면서 말해진 것 중 가장 썩어빠진 말이라고 했다. 놀랍게도 베이토는 이런 설전(舌戰) 교환은 인용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나라에서 주도적인 반간섭주의 신문은 로버트 맥코믹 대령(Colonel Robert R. McCormick)이 발행했던 《시카고 호민관 일보(Chicago Daily Tribune)》였는데,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루즈벨트는 그 신문을 아예 없애버리려고 했고, 그가 맥코믹의 사촌들이 발행했던 동맹지들, 조셉 패터슨(Joseph Patterson)이 발행했던 《뉴욕일보(New York Daily News)》, 그의 여동생이었던 “씨시(Cissy)” 패터슨이 발행했던 《워싱턴 시사보도(Washington Times-Herald)》도 함께 없애버리려고 했던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조셉 패터슨은 루즈벨트의 막역한 친구였었지만, 대출 및 물융법 및 진주만 공습 이전 동맹국들에 대한 다른 원조 조치들을 두고 그와 갈라섰다. “1941년에 패터슨의 신문과 맥코믹은 루즈벨트에 대항하여 준-반역적인 ‘패터슨-맥코믹 추축(Patterson-McCormick Axis)’을 형성했는데, 이는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패퇴시켜야 하는 것이었다.” 이 “추축(Axis)”에 대한 루즈벨트의 견해는 전쟁 내내 지속되었다. 


복수 그리고 복수욕은, 특히 허스트(Hearst), 패터슨 일가(Pattersons), 맥코믹(McCormick)과 관련하여, 지속적으로 대통령의 주된 동력이었었다. 1942년 10월에는 그는 조 패터슨(Joe Patterson)에게 평화협상단을 보내자는 모리스 언스트([Morris] Ernst, [1888~1976. 법률가로서 미국인의 검열로부터의 사생활권 및 자유권을 옹호하였고, 언론종사자의 노동조합 가입권을 주장하였으며, 반공주의를 견지했다.])의 계획을 좌초시켜버렸다. … 그 대신에 루즈벨트는 언스트에게 도전하지 말라고 했고, 패터슨에게도 “언론 자유는 반드시 정확한 뉴스를 인쇄할 자유, 사실과 관련한 진실성의 기반 위에서 뉴스를 비판할 자유가 아니”라는 질문으로 대들라고 했다.


베이토의 책은 그의 부지런한 조사연구 도중에 발견했던 많은 맹아(萌芽)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한 가지 항목은 1차 세계대전 수정주의자들에게 도움과 위안을 주고 있다. 그는 《뉴욕탐사(New York Enquirer)》 지 발행인이었던, 비록 나중에 소송이 취하되긴 했지만, 불운하게도 난동 부추기기 재판(Sedition Trial)에서의 피고인이기도 했던, 윌리엄 그리핀(William Griffin)이 1936년에 그이 신문에 실린 기사에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 “‘미국은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신경 썼어야 했고 세계대전에서 빠져있어야 했다. 만일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동맹국들은 1917년 봄에 독일과 평화를 만들어내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전후 처리의 가혹함으로 인하여 그에 반발하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대두되는 것을 막았을 것이다. 처칠은 그 발언에 대해 질문을 받자, 비록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나중에는 그리핀과의 인터뷰 회합을 기억해 내고도, 그 인용문을 ‘사악한 거짓말’이라고 때려버렸다.” 베이토는 존 로이 칼슨(John Roy Carlson)이라는 필명의 저자가 쓴 악명 높은 책 《막후(幕後)(Undercover)》에도 정당한 관심을 이끌어냈다. 이 책은 [루즈벨트의 전쟁 참여에 반대하는] 미국의 반간섭주의자들이 나찌와 한 패거리라는 점을 보여줄 의도를 가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존 플린(John T. Flynn)의 1947년 소책자 《먹칠하기 테러(The Smear Terror)》<1>를 언급하지 않았다. 플린이 AFC의 주요 인물이었고, 그래서 베이토가 그에 대한 주의를 기울였던 것은 온당하지만, 그가 “칼슨의” 책을 공격했다는 점을 언급하지는 않은 것이다.  


나는 그 책에서 아주 가치 있는 자료들 다수를 빠뜨려야 했다. 닥터 수스(Dr. Seuss)로 활동했던 아동문학가 테오도어 가이젤(Theodor Geisel)의 명성에 당신이 아무리 경의를 표하더라도, 베이토가 그에 대해 폭로할 경우라면, 당신이 그 폭로로부터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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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ia800106.us.archive.org/33/items/1947Flynn/1947_flynn.pdf



글쓴이) David Gordon

데이비드 고든은 미제스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고 《미제스 리뷰(Mises Review)》의 편집자이다. 


옮긴이) 박종운(자유시민연합 사무총장, 경제사)


원문) https://mises.org/friday-philosophy/bad-deal-was-new-deal-fdrs-assault-individual-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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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님의 댓글

김도헌 작성일

경기 불황시에 왜 정부가 돈을 풀어야 하나?
1. 케인스나 밀턴 프리드먼이나 벤 버냉키도 경기불황에는 정부가 돈을 풀어야만 나아진다고 한다.
2.그리고 루즈벨트의 뉴딜처럼 공공 사업을 통해서 일자리를 마련하고 돈을 실업자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한다.
3.그러나 그 돈은 재정지출을 통해서든 화폐를 찍어서든 화폐량을 늘리고 물가에 영향을 주게 된다.
4.이 돈은 미래에 상승 가능한 화폐 구매력을 낮추어서 국가나 정부가 먼저 쓰는 것인데 이는 화폐를 제일 나중에 받는 사람에게는 큰 피해를 준다.
5.물론 실업률을 낮추는 것이 공공 선택론에서 말하는 재선과 득표극대화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6.그러나 정부가 먼저 쓴만큼 민간에서는 덜 써야 한다.
7.경제불황에서 돈을 풀면 디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으로 바뀐다.
8.물론 미제스의 단계적 화폐 구매력 궁 설에 따르면 제일 먼저 실업자들이 화폐구매력이 떨어지기 전에 돈을 받고 쓰면 그 실업자들은 이득을 본다.
9.그러나 화폐구매력이 낮아진 뒤에 돈을 받는 사람들은 물가가 다 치솟은 다음에 제일 나중에 돈을 받기에 손해를 본다.
10.돈을 풀면 화폐 구매력이 낮아지고 그 돈을 제일 먼저 쓴 사람이 이득을 얻고 자본이 낭비된다.
11.자본 축적이 낭비되고 방해받으면 생산수단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과학기술의 발전이 늦추어지고 임금 상승에도 방해를 준다.
12.불경기에는 돈을 풀면 반짝 경기로 호황이 찾아오는듯 하지만 또다른 경기침체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13.그래서 경기불황시에는 돈을 풀고 재정지출을 늘리기 보다는 기업들에게 수출을 증가하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 관세와 세금을 낮추는 것이 좋다.
14.그리고 한국에서는 사회적 인프라를 위해서 돈을 투자지출하는 것은 좋지만 관료들이 행하는 것은 비효율과 낭비가 심하니 민간기업들을 통해서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15.그리고 경기불황에는 경쟁적 요소를 가미해서 잘할수 있는 기업에게 집중 투자하고 못하는 좀비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 옥석 가리기가 더 중요하다.
16.경제 대공황시에는 돈을 풀어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지식을 연구하고 개발해서 같은 돈으로도 더 나은 성과를 낼수 있는 또는 같은 일을 하는데 더 비용을 싸게 하는 지식과 지혜를 발견하는 기업과 사람에게 집중 투자해야 한다.
김도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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